노무현대통령님은 개인적인 생각으로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 가장 민주적이고 진보적이고 깨어 있으셨으며, 그 누구보다도 국민의 삶을 위해서 일평생을 헌신했다고 말하고 싶다. 많은 의견이 있지만 나는 가장 존경하고 아직까지도 보고 싶은 유일한 대통령님이다.
1. 노무현대통령님의 일생
고졸 학력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명되었으나 7개월 만에 사퇴하고 부산에서 변호사를 개업, 1981년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은 일을 계기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후 김영삼의 제의를 받아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여 같은 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초선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청문회에서 전직 대통령, 전두환을 질풍같이 질타하며 국민들에게 각인되었다.
3당 합당에 반대하여 김영삼과 결별하여 민주당 소위 꼬마민주당을 만들어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우며 부산에 출마하여 낙선하는 등 어려운 험지를 마다하지 않고 대의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를 국민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이때 정치인 최초의 팬클럽 노사모가 탄생되었다.
김대중대통령이 당선된 국민의 정부에서 해양수산부장관을 거쳐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새천년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 당내 반발,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그리고 정몽준 후모의 단일화 파기 등등 여러 어려움을 돌파하여 당시 한나라당 소속 이회창 후보를 꺾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셨다.
이후 한나라당의 발목 잡기식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선거 관련발언으로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 소추를 당하셨지만 헌법 재판소에서 기각되어 직무에 복귀하였다. 그 뒤 한나라당은 엄청난 국민의 반발에 부딪혀 당이 해체 수준까지 갔다.
퇴임 후에는 봉화마을로 귀향하신 후 박연차 게이트 등 친인척 비리로 검찰의 수사를 받다가 무리한 검찰수사와 무자비한 언론들의 소위 가짜뉴스까지 보태어져서 결국 스스로 투신하셨다.
2. 노무현대통령님의 업적
법치주의 확립을 위한 노력으로 국정원장의 독대 보고를 없애고 사법부에 뿌리 깊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최초의 여성 법무부 장관인 강금실 장관을 임명하기도 했다. 사법사상 최초로 여성 헌법재판관과 대법관을 탄생시켰다.
선거공영제를 확대하여 돈이 들지 않는 선거제를 확립하였고, 시민단체의 활발한 정치참여를 유도하였고, 정부의 시장 개입을 없앰으로써 정격유착의 고리를 상당 부분 끊어버렸고,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하셨고 무엇보다도 권위주의를 청산하신 것 등은 모두 노무현대통령의 업적이다.
그 외 경제적인 부분이나 아주 사회 여러 분야에 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바로 노무현의 참여정부시절이었다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진보적 가치 실현,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 등 노무현 정신은 노무현의 삶처럼 사람 냄새나는 삶의 실현이다.
대통령의 언어가 아닌 서민의 언어로 말하고 서민의 몸짓으로 행동하는 서민적 풍모는 전직 대통령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서민대통령이었다.
특히 남북 화해 부분에서는 대북 리스크를 없앰으로써 국민들의 불안감이 없어져서 마음껏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외교분야, 통일분야에서도 역대 가장 많은 업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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